정치와 사회

간호법 - 한 번 더 거부권

레기통쓰 2023. 5. 16. 13:51

대통령은 헌법 제 53조 2, 3 항에 의거해서 법률을 재의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를 보통 거부권이라고 부른다. 밑에 기사에서 보듯 재의요구권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尹대통령,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권 행사…취임 후 2번째 | 연합뉴스 (yna.co.kr)

 

尹대통령,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권 행사…취임 후 2번째 |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한지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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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이 행사 되었다. 거부권이나 재의요구권이란 이름은 편의상 부르는 이름이다. 실제 헌법 53조(글 아래에 전문을 실었다)에는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만 표현되며 재의요구권이나 거부권이라는 이름은 언론이 붙인 이름이다(지방의회의 경우에는 '재의요구권'이라는 이름이 지방자치법상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대법원 판례에서 '재의요구권'이라는 이름이 명시된 적이 있다). 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를 국회의 합의 없이 통과되었다는 이유로 댄다. 대통령의 권한이기 때문에 거부권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공약이라 거부권은 안된다는 주장은 어설프다. 이미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공약을 안 지킨 예가 있는 사람에게 공약이니 지켜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되다. 

 

간호법을 거부하면서 대통령이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 "또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

3.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

 

1번은 맞는 말이다. 간호법은 너무 많은 적을 만드는 법이다. 특히 간호조무사들이 가장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고 간호범위를 명확히 하여 간호의 품질을 높이고자하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간호조무사 및 임상병리사, 방사선기사 등등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이외의 모든 직역들이 간호사의 밑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법으로 다른 직역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간호사의 역할을 명확히 하는 것은 간호법 제정의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다른 직의 일을 '간호사의 지도 및 감독아래'라는 표현으로 자신들의 아래에 두겠다는 뜻은 의료기관에서 간호사의 자리를 굳게 하면서 다른 이들을 부리겠다는 뜻으로 보이게 된다. 

 

2번은 의사들의 입장을 정확히 대변하는 말이다. 국민의 불안감이라는 건 의사나 의사가족인 국민의 불안감이다. 간호업무가 의료기관을 넘어서 간호사 고유의 기관 설립까지 가능하게 되어버리면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는 의사들이 된다. 그리고 노인돌봄이라는 분야로 한정지어 보면, 진단, 처방과 수술 등의 의료행위에 일평생을 매진해온 의사들은 세심하고 다정한 간호스킬로 무장한 간호사와 경쟁자체가 안된다.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 될 것인데 문제는 사회가 노령화가 됨에 따라 저 노인돌봄이 의료계의 주된 사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간호협회에서는 이에 대해 현재 의료법 상으로 간호사가 따로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안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에 간호법이 생기고 거기에 '간호사에 대한 규정은 간호법이 우선된다'라는 규정을 넣고 '기관 설립이 된다'라는 규정을 넣어버리면 그 때는 의료법으로 막을 수가 없다. 의사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지금은 안되어도 간호법이라는 게 의료법과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 거기에 몇 개의 조문만 넣으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번은 저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나 하고 반성해봤으면 좋을 말을 스스로 하시니 참 고마울 뿐이다. 현재 검사 중심의 정치와 부자 중심의 정치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면서도 '마이웨이'를 외치며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저런 말을 하다니... 내가 전에 쓴 글(윤석열과 국회. 아직도 검찰인 윤석열)에서 지적한 적이 있는데 

 

"원래 이럴 때는 여야가 카메라 없는 뒤에서 만나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협의해서 하나 받고 하나 주고 해야 되는데 지금 국민의힘의 의원중에 그걸 할 사람이 없다. 아니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실에서 이미 국민의힘 지도부 선출에 너무 많이 관여해버렸다. 다음 총선의 공천권도 대통령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싫어'를 외치는 대통령실에다가 '민주당과 협의를 좀 해서 몇 개는 양보할께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통령실이 마이웨이를 걸어 버리고 야당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당의 지도부 마저 꽉 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야당과 숙의를 거칠 수 있을까? 야당이 뭐만 하면 다 반대하고 여야가 서로에게 나쁜 놈이라고 욕만 하고 있다. 아마 간호법을 국민의힘에서 발의하여 통과 시켰으면 민주당이 반대했을 정도로 지금 국회 분위기는 협치가 아예 실종된 상태이다. 이런 분위기는 대통령실이 먼저 만든 것이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런 국회의 상황을 만든 측면이 있다.

 

대통령은 당선 후 좀 싫어도 이재명을 만났어야 했다. 재판은 둘째 치고 말로라도 협력해달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거 없다. '기소되면 범죄자'라는 검사의 눈으로 정치를 보는 대통령은 이재명을 죄인취급하면서 민주당 자체를 죄인집단으로 대했다. 그런 대통령실이 여당 지도부 선출마저 깊숙히 관여하더니 자신들의 뜻 대로 유승민, 나경원을 낙마시키고 안철수를 압박하여 김기현을 당선시켰다. 여당의 누가 봐도 지금 여당의 권력의 핵심은 대통령실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과 협의를 하겠습니다. 야당에 한 발 양보해주고 다른 걸 얻어 내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민의힘의 구성원들의 민주당 공격이 더 원초적이게 되고 말도 안되는 논리까지 동원하게 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랬던 대통령실이 여야의 숙의가 없단다. 지금은 여야의 숙의 자체가 불가능한 시기인데 숙의가 없어서 거부한댄다. 이건 자신들이 맘에 들지 않는 모든 법을 다 거부하겠다는 뜻이고 국회 자체를 행정부(대통령실)의 아래로 두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미 대통령실은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수행하고 있다. 즉 사법부를 자신들의 아래로 보고 무시한 전력이 있는 것이다. 저번에 행사한 양곡법 거부권과 이번 간호법 거부권은 국회자체를 무시하는 입법부 패싱을 의미한다. 3권 분립의 나라에서 행정부 혼자 독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모든 걸 다 이해하는 맘으로 간호법을 바라보자. 이번 간호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행사되었다. 그렇다면 재의를 거쳐야 하는데 과반의 출석과 2/3의 찬성을 받을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재의가 불가능하다면 몇 가지 개정을 해서 (잘 안되겠지만) 국민의힘과 의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직역들을 설득한 뒤에 다시 올려야 한다. 앞에서 말한 1. 2.의 이유는 민주당이나 간호협회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하고 저런 오해가 없어질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물론 다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직역들과 협의해서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라는 원래의 목적만을 유지한다면 어설픈 표현같은 거는 바꾸어도 된다는 소리이다. 즉 가장 중요한 간호사 1명당 최대 환자 수의 명시, 어떤 업무가 간호사의 업무인지를 명확히하는 간호범위의 명문화까지만 얻어낸다면 다른 직역과 싸울 거 같은 표현은 다 버려도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3의 이유는 대통령실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 거부권

헌법 제53조 

①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②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또한 같다.
③대통령은 법률안의 일부에 대하여 또는 법률안을 수정하여 재의를 요구할 수 없다.
④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⑤대통령이 제1항의 기간 내에 공포나 재의의 요구를 하지 아니한 때에도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⑥대통령은 제4항과 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된 법률을 지체없이 공포하여야 한다. 제5항에 의하여 법률이 확정된 후 또는 제4항에 의한 확정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아니할 때에는 국회의장이 이를 공포한다.
⑦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

 

사족)

내가 볼 때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단하다. 입법부(국회) 자체를 무시하는데도 조용하게 있다. 오히려 행정부 편을 들면서 민주당 욕하기에 바쁘다. 민주당 의원들도 대단한 사람이 많다. 대통령실이 국회를 무시하는데 대통령에게서 문제를 찾지 않고 그 이유가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라면서 이재명을 욕하기 바쁜 사람들도 많다(이건 마치 우리가 약해서 일본에 먹혔다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강간 피해자가 뭔가 야한 행동이나 옷차림을 해서 그런 꼴 당했다는 논리와 같다). 무엇보다 가장 대단한 것은  사법부이다. 국회는 여야로 나눠져 있기라도 하지 사법부는 하나인데 그 사법부의 최고권위가 완벽하게 무시당하고 있는데도 그냥 조용하다. 

 

사족스러운 참고)

지방자치단체의 장 역시 재의를 요청할 수가 있다. 지방자치법의 120조 121조에 의거해서 할 수 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이의만 있어도'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법에 의거해서'(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다 정해져 있다) 재의요구를 해야한다. 여기서도 재의요구권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제120조(지방의회의 의결에 대한 재의 요구와 제소) 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의회의 의결이 월권이거나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되면 그 의결사항을 이송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② 제1항의 요구에 대하여 재의한 결과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의결사항은 확정된다.
③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제2항에 따라 재의결된 사항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인정되면 대법원에 소(訴)를 제기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제192조제4항을 준용한다.

제121조(예산상 집행 불가능한 의결의 재의 요구) 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의회의 의결이 예산상 집행할 수 없는 경비를 포함하고 있다고 인정되면 그 의결사항을 이송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② 지방의회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비를 줄이는 의결을 할 때에도 제1항과 같다.
1. 법령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의무적으로 부담하여야 할 경비
2. 비상재해로 인한 시설의 응급 복구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
③ 제1항과 제2항의 경우에는 제120조제2항을 준용한다.

 

법령 조문은 국가법령정보센터 (law.go.kr)에서 긁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