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곧 방출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 여자배구

레기통쓰 2023. 5. 1. 22:00

혹시 ‘살생부’에 내 이름도?… V리그 5월은 ‘시련의 계절’ (naver.com)

 

혹시 ‘살생부’에 내 이름도?… V리그 5월은 ‘시련의 계절’

찬란한 5월이 누군가에겐 시련의 계절이 되기도 한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과감한 베팅으로 자원을 붙잡고 첫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선수를 선발한 프로배구 남녀 팀들은 이제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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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4대 스포츠 중에 2군제도가 없는 것은 배구가 유일할 것이다. 농구조차 D리그(남자) 또는 퓨쳐스리그(여자)라고 따로 있는데 말이지. 그래서 배구선수 중 일부는 누군가가 부상으로 빠지지 않는 이상 대기구간(웜업존, 주로 닭장이라 불린다)에서 응원만 하다가 방출되고 끝내 은퇴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운이 좋아 실업리그로 간다고 해도 실업리그가 활성화 된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의 수입으로는 최저시급 수준인 그냥 버티는 정도의 리그라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리그는 아니다(작년과 올해 최고의 신데렐라라는 도로공사의 이윤정처럼 처음부터 프로포기하고 실업리그에서 실력을 쌓은 아주 희귀한 케이스도 있기도 하지만 그건 이윤정이 늘 사람 부족에 시달리는 세터라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엔트리는 정해져 있고 선수단이 받는 연봉은 상한선이 존재한다. 이른바 샐러리 캡이다. 월급 모자? 그렇게 읽히는 단어 때문에 아직도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김연경이 FA로 받는 연봉이 남자배구의 나경복보다 더 적은 상황이 생기는 거다. 웃기려고 모자라고 번역했는데 저 경우에 캡은 상한선이라는 뜻이다. 모자와 마루로 영어에서는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cap이 상한값이라면 floor은 하한값, 어째든 샐러리 캡과 선수단 유지비용등의 이유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도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기회 한 번 못받고 원포인트 서버 정도로 한 두번 코트에 들어갔다가 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있다. 일단 경기 수가 적다. 외국리그는 1주일에 한 번 정도 뛴다고 한다(우리리그는 4~6일 간격이지만 가끔 일주일에 세 번도 뛰는 케이스도 있긴 하다). 그렇게 띄엄띄엄 경기를 하는데 신인이나 검증 안된 사람을 쓸 수가 없다. 1패를 하면 1승은 해야 버티기라도 될 건데 일반적으로 5일 간격으로 경기를 한다고 하면 1패 후에 적어도 5일은 지나야 승패 손익을 맞출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고자 경기수를 늘리면 선수들 부상이 점점 많아지고 경기 내용이 개판이 된다. 다시 말해 경기수는 더 이상 늘릴수가 없다는 것이다(지금도 V리그는 몰빵이 심하고 1주에 경기수가 너무 많고 돈도 짜서 외국 용병들 중 최상급은 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리그이다). 경기수는 더 늘릴 수 없고 지는 건 손해가 너무 크니 쓸놈쓸(쓰는 놈만 쓴다)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신인이나 후보들에게 기회를 줄 수가 현실적으로 없다.

 

내가 응원하는 현대건설로만 범위를 좁혀보자. 김가영이라는 선수가 있다. 나무위키에 적힌 걸 긁어와본다.

 

"2021-2022 신인드래프트에서 기존 구단 정식 등록선수 맨 마지막 차례에 뽑히고 펑펑 울었다. 강성형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본인도 울컥했던 장면이었으며, "좋은 눈물이었다"라고 언급했다."

 

'저를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던, 감독도 울컥했다는 선수는 이쁘고 순진하게 생긴 외모로 인해 팬들 사이에 단톡방도 있을만큼 인기를 얻었다(프로선수가 외모로 단톡이 생겼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단톡방에 본인이 1년만에 팀을 나오게 되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나무위키에 보면 딱 한 번 원포인트 서버로 서브후에 수비한 번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교체되어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예의상 코트는 한 번 밟게 하고 내보낸 것이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렸는지 실업리그로 가게 되었다. 똑같이 원포인트 서버로 활약하던 팀동료인 전하리도 함께(전하리의 서브로 분위기를 바꿔 이긴 경기가 몇 개 있는데 내보낼 때는 가차없다). 키가 작지만 점프가 좋다, 부상을 입었지만 점점 회복되어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다 등등의 사실은 아무런 고려가치도 없다. 날개 공격수가 늘 부족했던 현대건설이지만 피지컬이 더 나은 이현지, 황윤성을 남기고 김가영은 내보내버렸다. 목포여상의 최고의 서버이자 공격수였던 이현지 역시 원포인트 서버로 정말 가끔만 나오는 상황(저번 시즌에 딱 서브 2번 넣은 게 끝이다)에서 김가영이 설 자리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이런 선수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신인이 설 자리는 너무 부족하다. 지난 시즌에 신인으로 활약한 사람은 없다. 오죽했으면 노란 선수의 부상 동안 공백을 메운 최효서가 신인상을 받았을까? 그 전 시즌으로 생각해봐도 박은서나 정윤주 정도 밖에 없다. 박은서는 팀이 신생팀이라 기회를 좀 받은 거다. 정윤주는 김연경 없던 흥국에서 제대로 된 날개 공격수가 김미연 밖에 없어서 흥국에서 밀어주는 것으로 보였는데 김연경이 돌아오고 쓸놈쓸 하는 감독이 오자마자 귀신같이 닭장에 쳐박혔다(176의 키인 정윤주가 180의 키인 김다은에게 밀린 것으로 보인다).

 

닭장에서 늘 응원만 하던 선수들은 가끔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언니들이 잘해 줄 것으로 믿었어요'라는 말을 달고 산다. 내가 들어가서 이길 수 있도록 해보겠다 이런 생각들은 없다. 그냥 구경하는 입장일 뿐이다. 연습경기에서나 뛰지 실전에서 뛸 기회자체가 없는데 내가 잘해보겠다 등등의 공격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가 없다. 누군가가 탈이 나거나 멘탈이 바스러지면 그 때 대체선수로 들어갈 기회라도 생기지만 보통 대체 선수는 선배 연차에 이미 있기 때문에 부상도미노가 아니면 설 일이 없다. 구단에서 팬서비스용으로 제공하는 영상을 보면 이런 선수들은 차에서 내려서 짐을 옮기고 시작전에 선배들이 먹을 음료수(생수에다가 영양제등을 타서 만든다)를 준비하고 연습용 배구공에 바람을 넣는 그런 잔일을 한다. 그리고 약간 몸 좀 푼뒤에 조금 연습을 하는 척 한 뒤에 닭장에서 응원만 한다. 눈으로 보면서 눈배구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 뛰는 것이 비할까? 경기에 뛰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닭장에만 있다가 은퇴하는 사람이 생기지...

 

원래 목표는 2군을 만들자라는 글을 쓰는 거 였는데... 이거저거 두서없이 적었다. 왜냐하면 글을 적을 수록 돈 문제로 2군을 운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빼고 2군 이야기를 아예 적지를 못했다. 배구(특히 여자배구)는 인기는 점점 많아지는데 선수 유입은 점점 안된다고 한다. 관중은 늘지만 관중 수입이 선수단을 운영할 만큼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모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이다(이건 우리나라 모든 프로스포츠가 가진 단점이다). 모기업이 손해보면서 선수단을 운영하는데 더 돈이 안될 게 뻔한 2군리그를 만들 수 있을까? 다른 프로리그와는 다르게 1군만으로도 홍보효과는 그럭저럭 누릴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선수 유입이 안되니 제대로 된 선수는 점점 줄어들고 그래서 주전들은 이번 우승팀 도로공사처럼(세터인 이윤정 빼고는 전부 FA를 몇 번씩은 해 본 사람들) 평균연령이 올라가고 있다. 40살이 넘은 정대영이 3억 연봉으로 이적하는 반면에 신인은 점점 기회를 받기 어려워지고 실전을 거치지 못하니 신인들의 실력은 점점 하향평준화되어 간다. 그런데도 김연경 등의 유명 스타들의 개인기로 인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다. 이 유명 스타들이 다 없어지고 어떻게 될까? 새로운 스타는 나올 수 있을까? 김연경 같은 정말 예외적인 선수 아니면 새로운 스타는 나오질 못할 거 같다. 기대를 걸었던 강소휘나 이소영이 한계를 보이는 것만 봐도 새로운 스타가 나올 확률이 너무 낮아보인다. 내가 볼 때 겨울을 즐겁게 해주던 배구가 점점 위험해보인다. 

 

예전 프로출범 전에는 여자배구 30살이면 강제은퇴도 당했는데 이젠 신인 걱정을 해야 하다니... 이번에 방출되는 선수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