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가 무언가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

고약하다

레기통쓰 2023. 7. 21. 22:47

'고약하다'라는 말을 쓰다가(누구를 보면서 '참 심보 고약하네'라는 말을 했다. 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어서) 갑자기 고약하다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궁금해졌다. 한자어일까? 아니면 순수 우리말일까?

 

표준 국어 대사전에 있는 고약하다 항목은 아래와 같다.

 

고약하다 형용사
1. 맛, 냄새 따위가 비위에 거슬리게 나쁘다.
생선이 썩는 고약한 냄새.

2. 얼굴 생김새가 흉하거나 험상궂다.
얼굴은 흉터가 있어 고약하게 보이지만 마음은 착하다.

3. 성미, 언행 따위가 사납다.
고약한 심보.

4. 인심, 풍습 따위가 도리에 벗어난 데가 있다.
그 집은 지나는 나그네에게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고약한 인심을 가졌다.

5. 날씨, 바람 따위가 거칠고 사납다.
천둥, 번개가 치는 고약한 날씨.

6. 일이 꼬여 난처하다.
지금 형편이 고약하게 돼 있기는 합니다마는, 그것은 앞으로 하기 나름이지요.
출처 <<박경리, 토지>>

 

한마디로 뭔가 나쁘다는 뜻으로 두루두루 쓰인다. 고약하다는 것이 순수 우리말인지 한자인지에 대해 나와있지 않다. 그래서 검색을 했더니 조선시대 신하 고약해(高若海)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 링크된 기사 조선시대 충신 '고약해'가 '고약하다'라는 말의 어원이 된 이유 (ft. 세종대왕) 에서 이렇게 검색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유명한(정형돈이 사랑한다던, 그리고 나도 정말 좋아하는)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고약해 에 대한 영상을 내보냈다고 한다. 

 

자기에게 대드는 강직한 신하라서 좋아하긴 했지만 그 정도가 심해서 세종대왕께서 안좋은 일에 '고약해 같다'이라는 말을 했다는 게 그 어원이라고 한다. 기사에는

 

"고약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세종대왕에게 직언을 퍼부었다. 고약해의 직언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왕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세종대왕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상황이나 인물을 "고약해 같다"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 말은 '비위나 도리에 맞지 않다'라는 뜻을 가진 '고약하다'라는 말로 발전하게 됐다."

 

라고 되어 있다. 관련되는 일화들도 많다. 고약해 : 고약하다의 어원이 고약해?에 보면 관련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다. 이게 만약 정말이라면 실록에 적혀있어야 한다. 임진왜란이 지난 후에는 좀 덜해졌지만 실록에는 왕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적혀 있다. 이 시대는 태종이 '적지 마라'라고 지시한 내용을 떡 하니 적어두고는 '이 내용을 적지 마라라고 말씀하시었다'라고 적던 시대였다. 그런데 신하 한 명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를 했는데도 실록에 없었을까?

 

실록에 실린 인물을 알려주는 고약해(高若海)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에 따르면 그의 생애는 다음과 같다

 

1393년(태조 2)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태종 초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가례(家禮)』를 준수한 일과 어머니에의 효행으로 사간원의 천거를 받아 공안부주부(恭安府注簿)에 제수되었다.

1418년(태종 18) 형조정랑으로 있을 때 무녀(巫女) 치죄에 대한 잘못으로 외방에 부처(付處), 세종 초에 복직되었다. 그뒤 장령 · 경창부소윤(慶昌府少尹)을 거쳐 예조참의 · 이조참의 · 충청도관찰사 · 한성부윤 · 형조참판 · 대사헌을 지냈다.

1434년(세종 16) 장령 민신(閔伸)과의 상핵사건(相劾事件)으로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황주목사 · 인수부윤(仁壽府尹) · 형조참판을 지냈다. 1442년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그가 마지막에 대사헌을 지내면서 왕에게 강직하게 진언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거 때문에 세종대왕께서 고약해를 싫어했다는 사실은 저 위의 기록에는 없다. (신록에 다른 곳에서 딱 한 번 더 언급되는데 강원감사 시절(1431년)에 효자와 열녀를 기념하는 문을 만들도록 주청을 올렸다는 기록이다)

 

세종대왕이 고약해를 싫어했다는 기록을 억지로 찾아보면 민신(閔伸)과의 상핵사건이 의심이 된다. 민신과 서로 탄핵했다는 내용이다. 민신은 안평대군의 사람으로 분류되지만(계유정란에 죽었다) 세종의 충신이다. 세종이 고약해를 맘에 안들어하면 세종을 대신해서 고약해를 조정에서 내보내기 위해 탄핵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을 거 같다. 민신과 상핵이다. 서로 탄핵했다는 것이다. 이는 서로 감정이 틀어졌다는 말이다. 고약해를 내보내기 위한 탄핵이었으면 고약해는 민신을 탄핵하는 것으로 맞불 놓는 것이 아니라 세종에게 상소를 올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말이 안되는 것 같다. 

 

차라리 괴악하다(怪惡하다. 형용사 말이나 행동이 이상야릇하고 흉악하다)가 어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말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