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사회

진상 민원인과 진상 공무원

레기통쓰 2023. 7. 8. 07:12

진상 민원인이라고 치면 기사가 우르르 나온다. 여기저기 글을 읽다가 보면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악마이다' 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온다.

 

"진상 민원인 무서워요" 공포에 떠는 구청 공무원 - 매일경제 (mk.co.kr)

 

조금 예전 기사지만 이런 기사가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기레기 답게 당시의 정부(문재인정부)들어서 더 심해졌다는 확인 안된 말도 적어 놓았다. 읽을 가치는 없는 기사이다. 하지만 클릭에 목숨거는 기레기 답게 제목을 잘 뽑아서 링크해보았다) 예전에는 이런 기사나 글을 보면 '원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작은 것이라도 빼앗기면 화가 나는 법'이라고 이해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라 약간의 자극에도 화를 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공무원들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어제 내가 겪은 바를 바탕으로 다시 말해보자면 '진상 공무원도 있을텐데 그 이야기는 왜 안할까' 라고 말하고 싶다.

 

어제의 나는 아마 진상 민원인이었을 것이다. 공공기관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방문했는데 내 방문 목적을 4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했다.

 

처음에 안내하는 분에게 내가 찾아온 과를 말을 했더니 어떤 일로 왔는지 다 설명을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온 목적을 설명했더니 담당자에게 안내를 해주었다. 그 담당자에게 다시 또 설명을 했다. 그 담당자가 잠시 알아보겠다고 하고 사라지더니 한참 후에 나타나서 자기는 잘 모르는 일이라고 나를 친절하게 다른 분에게 보냈다.

 

'저기 안내표의 어떤 항목을 뽑으시구요. 거기 가서 이러이러한 것을 물어보세요' 

 

거기가서 다시 또 내가 온 이유를 열심히 설명을 했다. 이번 사람은 내 이야기를 잘 못 알아듣는 거 같았다. 모니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채로 자꾸 이상한 질문만 했다. '그게 아니라' 라는 말을 몇 번을 해 가면서 계속 이야기를 설명했는데 끝까지 못 알아듣고 알아보겠다면서 자리를 비우더니 한참 후에 자기 상급자를 데리고 왔다. 대체 내 말을 어떻게 들었으면 저렇게 전달할까 싶을 정도로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상급자는 나를 진상취급하면서 그렇게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 열받았다... '아 sit8' 이라고 큰 소리쳤더니 그 사람이 순간 움찔하는 게 보였다. 순간 나도 놀라서 사과하면서

 

'제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여기 와서 담당자에게 말을 했더니 이 창구로 보내셨다. 내가 온 목적은 이러이러 한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자기 부하직원을 한 번 째려보더니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면서 다시 내게 설명을 요구하였다. 아.. 4번째인가... 열이 받아서 잠시 숨을 고른 뒤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한참동안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결론은 규정상 안된단다고 하신다. 아니 처음부터 안된다고 하던가... 규정이 개판이라서 이게 안되는게 아니냐고 했더니 맞다고 한다. 규정이 이상해서 확인차 찾아온 건데 그 규정을 자신들이 고칠수가 없고 자신들은 규정상 못해준단다... 처음 사람은 왜 나를 이리 보냈냐고 하니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그 분도 안된다는 걸 알았는데 내가 규정이 이상하다고 따지니까 그럼 여기서 혹시나 고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보낸거라고 한다. 그 분의 설명으로는 나를 위해 배려를 해준 것이라고 했으나 내게는 '귀찮으니 이리 보내버린 것'이라고 이해되었다. 결국 나는 진상이 되어서... 욕은 차마 못하고 비꼬는 말만 한마디 던져주었다. 

 

"시스템이 X같아서 이게 안되는 거네요. (네. 죄송합니다) 처음 분이 진작 그렇게 말씀해주셨으면 이렇게 시간 낭비를 안했을건데요. 여러분도 이런 X같은 사람 안 만났을거구요. 그 사람한테 욕해주고 싶네요. 정말 X같은 하루네요" (X는 ㅈ으로 시작되는 그거 맞다)

 

사실 그 상사를 데려온 사람이 더 잘못한 느낌이지만 차마 내 눈앞에서 상사에게 째려봄을 당한 사람에게 더 뭐라고 하기가 그래서... 나를 이 쪽으로 보낸 사람만 비꼬았다.

 

이 이야기를 어제 지인에게 하니까('같이 욕해줘' 라는 느낌으로 좀 과장스럽게 이야기 했다) 원래 공무원들이 그렇다고 한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것은 다른 곳으로 미루기 때문에 좀 복잡한 문제를 들고 공무원에게 가면 이리저리 뺑뺑이 도는 것은 예삿일이라고 한다.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뺑뺑이 돌다 보면 나중에는 같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짜증이 점점 생기고 다시 또 똑같은 이야기를 물어보면 욕부터 나오는 거라고 이해가 된다. 

 

위의 기사에서 소개된 진상 민원인들은 끔직한 사람들이다. 소개된 내용으로만 본다면.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 어제의 나같은 사람은 없었을까? 나는 겁이 많아서 화는 못내고(화를 내었을 때 상대도 같이 화내는 게 무서워서 화를 잘 안낸다) 4번째 설명만에 그냥 비꼬는 말 한마디 하고 포기하고 나왔다. 나는 뭘 받으러 간게 아니라서 그냥 공무원이 진상이구나 하고 (속으로) 욕 한 번 하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만약 기초수급자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뭘 받으러 갔는데 나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아마 엄청나게 화를 냈을 거 같다. 자기가 원래 받던 돈이나 혜택이 줄어드는데 그 이유를 아무도 자기에게 이야기를 안해주고 '그냥 받아라' 라고 한다거나 다른 쪽에 가서 알아보라고 서로서로 미루었을 경우는 없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규정이 이상해서 내가 원래 받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규정자체가 이상한 건데 정해진 규정이라 못 준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화를 내지 않기가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진상을 감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꼭 민원인만 진상이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진상공무원도 답 없다.

 

(진상민원인이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절대! 완전! 반대이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은 나도 잠시 했지만 겁이 많아서 곧 포기했다. 난 여자분들과도 싸우면 내가 질 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사족)

저번주 금요일에 동사무소(요새 말로는 주민센터 라고 한다. 나는 저 말이 싫다. public service center라고 다 영어로 쓰던가 동사무소로 다 한자로 쓰던가... 주민 + center는 대체..)에 서류를 하나 뗄 일이 있어 갔다. 무인으로 하면 무료라고 해서 갔는데 내 손가락이 인식이 안되었다. 본인 확인을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엄지 손가락으로 하더라. 그래서 안내를 보니 인식이 안되면 기존 주민증을 반납하고 새로 받으면 된다고 적혀있었다(기존 주민증 반납하면 무료라는 안내도 되어있었다).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신분증을 주고 엄지손가락을 어디에 한번 대보라 하였다. 뭘 확인하더니 인식이 안된다고 필요한 서류가 뭐냐고 물었다. 어떤 서류다 했더니 '몇 부요?' 라고 물어서 '한 부 요'라고 말했더니 바로 뽑아주더니 돈 내란다. 아니 나는 주민등록증을 바꾸러 왔다고 하니까 '지금은 안되요' 라면서 서류를 계속 내민다. 돈 내고 받으라는 뜻이겠지.

 

"아니 저 밖에 기계를 쓸 수 있게 바꾸어줘야지요"

 

라고 하니 무슨 진상보듯이 계속 지금은 안된다고 한다. 금요일 오후에 그것도 곧 마칠 시간이었다. 뒤에 대기표 뽑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뜨거워서 돈 주고 받았다(다들 급했을 거다). 집에 오면서 소심한 나를 계속 원망했다. 어차피 서류는 월요일에 필요한데... 그냥 월요일에 주민증을 바꾸고 그냥 뽑을껄... 아 젠장. 저런 진상에게 한 마디를 못해주고 나왔네... 등등 혼자 스스로 원망만 했다.

 

1주일만인 어제 또 다시 다른 곳에서 비슷한 진상공무원을 봤더니 저번주에 그냥 넘어갔던 일이 다시 떠오른다. 아 짜증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