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독후감까지는 아니고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만난 사회

레기통쓰 2023. 6. 25. 15:43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만난 사회 라는 책을 읽었다.

야마무라 모토키 라는 일본인이 쓴 책이다. 일본에서 2014년에 발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번역되었다. 일본의 개호(介護)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 책이다. 

 

개호(介護)란 간병(看病)의 일본식 표현이다(법률에도 개호라는 표현이 있다. 개정하자고 한 적이 있다. 2020년 12월 기사 개호(介護)? 간병!…일본식 법률용어 바꾼다에 따르면 이런 예전 표현이나 일본식표현, 어려운 표현들을 쉬운 말로 고치는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결국 2021년 ‘개호’는 ‘간병’으로, ‘작목’은 ‘재배작물’로, 대통령령 속 어려운 용어를 알기 쉽게 < 보도자료 < 뉴스·소식 : 법제처 (moleg.go.kr) 법제처에서 주도하여 법령을 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2023년에도 보험사들은 개호관련특정질병, 개호유발특정질병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뇌출혈 크로이츠펠트-야콥병파키슨병 알츠하이머병 근위측성측삭경화증전신형 중증무근력증 같은 것들을 말한다(보험사마다 다르다. 약관에 규정되어 있다)). 이 책에서 개호(介護)라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소개글인 여기에서도 개호라는 표현을 쓰기로 하겠다.

 

개호(介護)란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이를 돌보는 모든 일을 말한다. 책에 의하면 일본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노인개호이다. 노인개호에는 노노개호(원래는 노부부 중 한명이 다른 한 명을 개호하는 것을 뜻했는데 초고령사회가 되어버린 일본에서는 이제 노노개호는 늙은 자식이 더 늙은 부모를 개호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한다), 인인개호(치매환자를 돌보는 이가 결국에는 치매가 되어 개호의 대상이 되는 문제) 등이 있다. 노인개호에 따르는 문제에는 개호살인(개호하던 사람을 살해), 개호피로(개호하다가 치쳐버림), 개호자살(개호하던 이의 자살), 개호심중(개호하던 이와 개호받던 이의 동반자살)등이 있다.

 

책에 의하면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독신개호(미혼, 비혼, 이혼 후에 독신상태로 개호를 담당하는 것)로 다른 개호보다 더 힘들고 더 결과가 나쁜 일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독신개호의 현실에 대해 고발하는 르포타주 형식의 글과 함께 독신개호를 어쩔 수 없이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충고의 글까지 이 책에 실었다. 2014년이 기준이긴 하지만 일본 경찰청의 발표에 따르면 자살요인 중 큰 비중으로 '개호 및 간병의 피로'라는 항목이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힘든 것이 늙은 노인을 개호하는 것이다. 가족이 전부 개호에 참여하면 부부의 경우에는 '부부싸움'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이라도 일어난다. 결과가 나쁠 수도 있지만 서로간에 느끼는 문제점을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독신개호는 그런 것도 없다. 오롯이 혼자만 모든 것을 책임지고 모든 부담을 떠 안아야 한다. 

 

일본은 2000년부터 개호보험제도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사회가 책임진다는 개념으로 시작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국가책임제'를 공약했던 것과 유사한 개념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재정이라는 것이 장벽이 되었다. 그래서 개호보험제도는 집에서 개호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되기 시작하였다. 일단 원칙은 개호의 예방이다. 노인들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를 지원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개호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집에서 개호하는 것에 대해 지원책을 강화하였다(시설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보조금은 줄어들고 집으로 의사의 왕진이 오는 것에 대한 수가(의사가 받는 돈)를 올리고 그 비용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였다. 시설에 대한 지원은 줄어들어서 시설에 들어가려면 개인부담이 커졌다. 그리고 이후 지역포괄 케어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말이 좋아서 지역포괄이지 가족이 개호하도록 강제하는 듯한 느낌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결국 개호를 수행하는 사람의 64%가 가족이 되었고 그 중 많은 수가 독신개호자였다. 

 

독신개호자는 가족단위의 개호자 또는 시설에서 직업으로 개호하는 사람에 비해서 여러가지 면에서 불리 할 수 밖에 없다. 먼저 감정적으로 위로를 받을 방법이 없다. 앞에서 잠시 이야기 했지만 가족이 참여하면 서로 싸우면서라도 문제점을 파악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 하지만 독신개호자들은 대부분이 사회에서 고립된다. 모든 신경이 개호의 대상자에게 쏠려 있기 때문에 밖에서 한가로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던가 어떤 모임에 참석한다던가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주인공 소녀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말못하고 듣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할머니를 수레에 싣고 산책을 다닌다. 다른 이와 뭘 할 시간도 돈도 없다(주인공인 아저씨와 저녁 같이 먹는 것이 유일한 일탈이다). 드라마라 그정도로 표현하였지만 실제로 치매같은 것 까지 왔다면 그 소녀는 회사를 다니지를 못한다. 그대로 두면 할머니가 죽기 때문이다. 그 소녀는 자기는 죽을 정도로 힘든데 도와주는 사람조차도 없다.  돈 문제도 큰 문제가 된다. 그래서 사채쓰다가 사채업자를 우발적으로 죽였다는 과거도 있다. 이렇게 독신으로 개호를 수행하는 사람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짊어지다가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된다. 

 

꼭 독신개호자가 아니더라도 개호를 하는 사람들에게 노인개호는 참 슬프고도 힘든 일이다. 개호들의 모든 시작은 다 다를 수 있어도 결말은 모두 같기 때문일 것이다. 노인개호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 죽음이 개호의 대상의 죽음이거나 개호를 수행하는 사람의 죽음이거나의 차이일 뿐이지 결과가 같다. 힘들다고 알려져 있는 아이를 돌보는 것과도 틀리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물질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로 맞는다. 처음에는 버벅거리다가도 적응이 되면 점점 익숙해진다. 그리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견'해 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사회적인 보장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노인개호는 다르다. 보통 갑작스럽게 맞는다. 어제까지 통화 잘 하던 늙으신 부모님중 한분이 갑자기 뇌출혈이 왔다거나 중풍을 맞는 경우도 많다. 치매처럼 서서히 찾아오면 준비라도 할 수 있지만 중풍같은 몇몇 병들의 경우 예상도 못하게 터지게 된다. 그렇게 갑자기 맞은 노인개호는 점점 상황이 나빠진다. 적응할 수는 있지만 익숙해질만하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거나 상황이 악화된다. 그냥 기억력이 좀 나빠지는 정도의 치매는 보살필 수라도 있다. 하지만 망상을 가지고 있는 치매는 정말 힘들다. 그 치매환자가 폭력까지 같이 행하면 전문가가 아니면 보살필 수가 없다. 가끔 뉴스에 요양원 노인을 결박하거나 해서 학대했다는 뉴스가 나오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치매와 폭력이 같이오면 그렇게라도 간병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들었다(안그러면 살인이 난다). 가장 큰 차이는 '미래'이다. 아이 돌보는 것과 같은 미래가 없다. 사회적으로도 응원받지 못한다(가끔 방송에서 효자니 효부니 칭찬하는 프로그램 정도 제작해주지만 별 도움이 안된다). 육아는 육아노이로제, 독박육아 등의 용어를 통해서 그 괴로움을 표현하지만 노인개호의 괴로움은 따로 표현하는 말도 없다. 그냥 수행하는 사람만 그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갈 뿐이다. 

 

이런 괴로움에 직면하게 되면 앞서서 말한 여러가지 사고가 터지게 된다. 개호의 괴로움에 대한 단락들을 책안에 정말 많다. 개호가 너무 힘들어서 모른체 했다는 것은 책 중에 '쓰러진 어머니를 방치한 아버지'라는 단락에 잘 나와 있다. 모른체 했다는 것 역시 학대중 일부이다(자기가 죽을 거 같은 힘듦에 환자를 방치하는 학대가 많다고 한다). 이 외에도 개호의 어려움을 나타낸 많은 글 중에 몇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 못본척하는 동안에도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 이대로 가다간 어머니를 죽일지도 몰라
  • 수면유도제를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등등이 있다. 결국에는 돌보던 이를 죽이거나 스스로를 죽이거나 같이 죽거나 같은 학대가 일어나게 된다. 6월 15일은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이란 글에서 나는 이런 노인학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런 학대 중의 많은 수가 노인개호의 괴로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혹시나 개호받던 이가 일찍 돌아가셔서 개호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자. 이왕 예를 드는 거 구체적으로 치매환자를 돌보던 이가 치매환자의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을 겪는지 살펴보자. 치매환자를 돌보던 이도 초고령화 사회에서는 역시 노인이라 개호에서 해방되자마자 치매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앞에서 말한 인인개호에 속하는 경우이다. 

 

이런 일본의 모습은 곧 우리나라의 모습이 될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결혼과 출산은 안하는 게 낫다는 사회분위기가 강하고 노인인구의 비는 전세계 최고이다. 초고령사회에 비혼사회가 만난 모습이 현재의 일본의 모습이다. 이 고령사회와 비혼사회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이 탄탄한 편이라 아직은 버티고 있는데(하지만 실제 받는 혜택도 작다) 언제 일본식으로 '니들이 알아서 해' 라고 변할지 모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왔던 소녀는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게 불가능해지면 일만 하던가 할머니만 돌보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드라마의 초반에 소녀가 보여주었던 그 절망에 가득찬 모습으로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버텨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되면...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거 안보려면 지금부터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이 안아프도록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내 배우자가 나 죽을 때까지 아프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