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가 무언가 새롭게 알아가는 것들

화를 내는 것에 대해 - 1. 노인들은 왜 화를 못 참을까?

레기통쓰 2023. 6. 10. 22:20

이유없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노인들을 자주 본다. 몇 일 전에도 봤다. 유튜브를 켜면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나 운전할 때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길가던 사람을 그냥 때려버리는 것부터 사회 전체가 분노에 휩쌓인 것 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 대해 '사람은 왜 화를 내는 것일까' 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했더니 이거저거 많은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몇 일 전에 본 노인을 생각하며 첫 번째 글을 써본다(두 번째 글은 왜 화를 내는 것일까? - 2. 당신은 누구에게 가장 자주 화를 내시나요? (tistory.com)에 있다). 어째든 결론부터 먼저 말하겠다. 노인들이 화를 못 참는 이유는 화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전두엽의 기능이 쇠퇴해서이다. (다른 글을 읽다가 결론이 뭐지 하고 스크롤을 먼저 내려버렸던 기억이 있어서 초반에 결론 먼저 쓰는 걸로 바꾸어보았다)

 

 

 

몇 일 전 일이다. 마트에서 계산하려고 줄을 서있었다. 어떤 할머니가 무대포로 내 앞으로 서는 것이다. 내가 '지금 나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내 뒤로 서면서 왜 그리 간격을 벌려 서 있냐고 투덜거렸다. 잘 들리게도 투덜거리는 걸 보면 그 때부터 화가 난 듯이 보이긴 했다. 어째든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내 차례가 되어서 계산하러 이동하는데 할머니가 살 것들은 자리에 둔 채로 어디론가 가는 것이다(뭘 산다는 걸 잊었는지 가지러 간 거 같았다). 내 것을 계산 다해가는데도 그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에 서 있던 모녀가 할머니가 안오니 계산을 하러 먼저 이동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엄청나게 화내는 것이다.

 

모녀 중 어머니가 '할머니가 자리 비우시고 저 아저씨가 계산 다해서 간 건데요'라고 하니까 '자기 짐 못 봤냐', '자기 무시하냐'등등 별 소리를 다 하는 것이다. 잠깐 구경했는데 저렇게 까지 화낼 건 아닌데... 그리고 모녀가 사려고 했던 건 몇 개 안되어서 금방 계산 할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구경하는데... 그 분은 세상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요새 MZ의 특징 중 하나가 '상대가 자기에게 잘못하면 그냥 사과는 필요없다. 상대의 완전한 굴복을 원한다'라고 하던데 그 할머니는 그런 것도 아닌 듯 했다. 사과를 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냥 화를 내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모녀가 사과도 하고 다른 곳으로 갔는데도 계속 누구를 특정하지 않고 화를 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주위를 돌아보며 세상 끝나는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다. 사과헸던 어머니와 옆에서 울 것같은 딸의 모습에 나도 화가 났지만 저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노인분들에게는 어떤 말도 안통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냥 포기했다. 직원들이 중재를 했는지 모녀는 다른 계산대에서 계산 마치고 나가고 할머니는 계산 다 했는데도 카드 줄 생각도 없이 직원들에게 화를 내며 훈계를 하고 있었다. 끝까지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저 할머니는 갑자기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정말 별거 아닌거 같은 일인데... 길가다가 허공에 소리지르면서 화내는 할아버지도 있던데 노인분들의 특징인가?

 

Bing의 image creator에게 부탁해서 만든 '마트 계산대에서 화내고 있는 할머니'의 그림이다. ai가 그림 잘 그리는데 한국 ai가 아니라서 외국인 할머니를 그려놨다.

 

 

몇 가지 참고할만한 뉴스들을 찾았다. 

 

‘딱 6초만 참아보라’ 똑똑하게 분노하는 법 | 일요신문 (ilyo.co.kr)

 

[해외뉴스] 日 “왜 노인은 화를 내는 것일까?” 주위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폭주 노인’의 슬픈 정체(한국의약통신)

 

[노인이 울고 있다] 성난 노인들 분노범죄 급증 (tvchosun.com)

 

이 뉴스들을 토대로 나름 정리를 해보았다. 

 

인간의 뇌 구조부터 알아보자. 우리의 뇌는 간단히 말하면 2중의 층으로 되어 있다. 

조선일보 기사 중의 그림이다. 왼쪽에 두엽이라고 적힌 곳이 전두엽이다

 

뇌의 깊은 곳에 대뇌 변연계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고, 그 위를 대뇌 신피질이 감싸고 있다. 우리의 감정은 이 변연계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변연계는 동물의 뇌라고 부른다. 이 영역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본능(생존본능, 식욕과 성욕)을 담당한다. 변연계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영역이다. 공포라는 감정을 생각해보자. 이 감정은 위험을 느꼈을 때 몸을 지키기 위한 행동(도망, 숨기 등등)을 빠르게 취하게 하는 감정이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분석이나 판단이 아무런 도움이 안될 때가 많다.

 

변연계를 감싸고 있는 신피질은 고등동물에게서 발달한 뇌이다. 인간의 신피질은 그 비율이 모든 동물 중에서 제일 크다. 신피질은 인간의 사고와 지적 활동에 관계되는 모든 기능을 담당한다. 말하기, 읽기, 쓰기, 계산하기, 사고하기 등등의 모든 지적인 활동에 관련된 뇌이다. 신피질 중에서도 특히 발달한 것이 전두엽이다. 이 전두엽을 가르켜서 '가장 인간다운 것을 담당하는 뇌'라고 한다. 이 영역은 의욕, 의지, 상상력, 창조성 등등을 담당하며 신피질 전체를 통제한다. 오늘 말할 내용과 관계가 있는 전두엽의 기능에는 감정의 조절이 있다. 대뇌 변연계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감정을 이성으로 컨트롤하는 역할이다.

 

전두엽이 나이가 들 수록 그 기능이 쇠퇴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나이가 들 수록 화를 참기가 어려운 것이다.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면 합리적 판단 능력이 쇠퇴하고, 노인성 우울증에 쉽게 걸리게 된다. 이렇게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 노인이 소외감이나 자괴감을 느끼면 폭력을 행사하거나 극단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극단적인 행동까지는 안해도 뭔가 소외감이나 자괴감을 느끼게 되면 화를 참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조선일보 기사에 나와있는 인터뷰를 잠시 보자

 

김이식 / 80세
"혼자 있으면 막 외롭고 마음이 불안하고 어디다 신경질 내봐야 나만 이상한 사람 돼"

김봉래 / 82세
"한마디로 말해서 거꾸로 돌아가 세상이..."

김용호 / 77세
"화도 나고 슬퍼... 나도 그 말 하려 하니까 울음 나와 진짜"

(기사에 실명이 나와서 그대로 옮겨왔다) 

 

이 세 분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계속 화가 나는 것 같다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소외감,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분노가 폭발하기 쉽다고 한다. 노인들이 특히 그런 이유는 본인이 젊었을 때는 부장이나 과장같은 직함이나 OO가게 사장님 같은 정체성이 있었는데 노인이 되면서 그런 것들(사회적 지위나 직함)이 없어지게 되어서라고 한다. 즉 사회적 이름이 없어지고 단지 할아버지, 할머니로 특징없이 불리게 되면서 '내가 한 때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날 이렇게 대접해? 날 무시하나?'같은 서운한 마음에 버럭 성을 내는 일이 잦아진다고 한다. 노인만 이렇게 화를 못 참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들이 이렇게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원래 화가 나는 것은 가장 컨트롤 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이런 걸 컨트롤 하려면 전두엽이 강력하게 이 감정을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중년때부터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기 시작하면서 이 감정의 억제 기능이 작동을 잘 못하게 된다. 그래서 중년부터 화를 참지 못하게 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게 되면 '고집이 세진다', '화를 잘내게 된다' 같은 전형적인 증상과 함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즐거움에 대해 둔감해져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만 남게 되어 '가던 곳만 가게 된다', '새로운 지식이나 문물은 아예 포기하고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등의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남자들이 나이가 들 수록 전두엽에 더 손상이 잘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특징들이 강해진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수십년만에 만난 친구(또는 동창)와 어제 만났던 것 처럼 수다를 떨 수 있는데 남자들은 오랜만에 만나서 할 이야기가 '이야 너 그 때 그대로네' 정도 외엔 없는 것이다(물론 할머니들 중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색해하는 사람도 많다. 전두엽의 손상정도에는 개인차가 있다). 할아버지들의 경우에는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반갑기는 한데 안만난 기간동안의 친구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귀찮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들이 보통 늘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고 늘 가는 식당만 간다. 이 전두엽의 손상이 남자에게 더 많다는 것은 아무데서나 화를 내는 노인 중에는 다수가 할아버지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일요신문의 기사에서는 이런 분노가 생길 때는 6초만 참아보라는 말이 있다. 뇌에서 전두엽이 활성화 될 때까지 걸리는 평균시간이라고 한다. 변연계에서의 감정은 순간적, 폭팔적으로 일어난다. 이렇게 나타난 감정, 특히 분노는 전두엽이 컨트롤 해주지 않으면 어떤 일을 벌릴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전두엽은 활성화 될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린다. 전두엽이 활성화 되었다고 분노가 다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사람을 친다던지 아니면 물건을 던진다던지 하는 폭력적인 행동은 어느정도 막아 낼 수 있다고 한다. 비단 노인 뿐 아니라 다른 세대의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라 소개해 둔다. 

 

그동안 나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노인분노는 그냥 나이가 들어서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렇게 방치되면 점점더 그렇게 된다. 이런 노인분노 역시 노화 질병 중 하나로 취급해서 적극적으로 상담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던가 하는 행동치료를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족)

화내는 노인들을 보면서 나는 나이 들면 저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전두엽에 손상이 오면 저럴 수 있겠다 싶다. 나이가 들 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도 전두엽에 손상이 온 것 때문인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울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