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시 의대정원 증원을 추진한다고 한다. 간호법·비대면진료 이어 불붙은 '의대정원'…전방위 압박받는 의료계 (msn.com)에 따르면
"2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일각에서 300~500명 선에서 구체적인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거론되는 가운데 정부는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와 진행 중인 '의료현안협의체'(의정협의)를 통해 의대정원 증원을 논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정협의에 따라 의료계와 협의 중인데, 논의를 회피한다고 해서 계속 끌려갈 수는 없다"며 "지역에서는 의대 신설 요구가 많고,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적의 대안을 찾아 필수의료 재건에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더는 의료계의 반대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라고 한다. '확정된 것은 없지만 늘리긴 늘리겠다' 이다. 저번 정부에서도 시도했다가 의사들의 단체 파업으로 포기한 정책이다. 이번 정부는 노동계 때려잡듯 의사들을 때려잡을 것인가 아니면 의사들이 지레 겁먹고 알아서 양보해줄 것인가가 관심이 간다. 특히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이라는 목표는 어떻게 달성할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외과나 소아과등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가 궁금하다. 특히 소아과는 인력확보하기가 외과보다 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소아과는 매우 힘든 과이다. 소아과의 문제점들은 여러가지가 있는 데 현재 뉴스 등에서 다루는 소아과의 힘든 점은 '돈이 안된다'와 '보호자의 갑질' 정도이다. 돈이 안되는 것은 외과 등 수술하는 모든 과들이 겪는 문제이긴 하다. (외과의는 자리가 많이 없어서 그렇지 소아과 전공의보다 연봉은 높다고 한다) 평균소득 최고 정신과·성형외과···최저 소아과·일반의사 (dailymedi.com)에 따르면 소아과 의사는 전공없이 개원한 의사들보다 살짝 더 버는 정도라고 한다(전공의가 되기 위해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까지 정말 힘든 몇 년을 생각하면 저 차이는 너무 심하다).
물론 극성인 부모나 몬스터패어런츠(일본에서 극성부모를 가르키는 용어)같은 보호자들의 문제도 있다. 이 글을 쓰다가 잠시만 검색해봐도 오늘 뉴스만
“귀지 떼주다 피났다”…소아과 의사에 소송건 ‘아기 엄마’ (msn.com)
"애가 가슴나오는 시기라 예민"…5살 여아 청진한 의사에게 '성추행' 항의한 엄마 (mbn.co.kr)
이렇게 나온다. 이렇게 (돈도 안되는데) 스트레스 받을 바에야 그냥 전공 포기하고 일반의사가 되겠다는 그들의 기자회견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어디 댓글(출처를 잘 모르겠다. 기억해 놓으려고 메모장에다가 복사만 해둬서)에서 읽어본 소아과가 힘든 진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최대한 원문을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다. 거친 표현은 지우거나 수정했고 ( )안의 말은 내가 부가 설명한 부분이다.
일단 소아환자는 성장기입니다. 호르몬이 아주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심인성 질환인 경우도 많습니다(심인성이란 질병의 원인이 따로 있지 않고 정신 혹은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뜻). 심인성 질환인 줄 알았는데, 진짜 병소가 나와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원인이 정신적인 건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병이 있었다는 이야기).
또 다른 문제는, 아이들은 감각이 한창 민감할 때라서 문진에서 얻을 수 있는 단서를 어디까지 반영해야 하는지의 기준부터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이게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인게 성인들은 대화를 통해서 병이나 문제되는 부분을 어느정도 알 수 있지만 애들은 자신의 상태를 잘 표현을 못한다. 애들과 부모님의 말이 1차 자료인데 이걸 어디까지 믿고 진단을 내릴지는 의사의 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라고 자식의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 자신의 상태를 잘 분석해서 대답해주는 것도 아니다) . 애는 죽니 사니 구르는데 (살펴보면) 그냥 긁힌 상처도 있고. 애는 문제 없이 태연하게 있는데, 서혜부 탈장 같은 거 때문에 오는 애들도 있습니다(서혜부는 사타구니를 말한다. 소아의 경우 성기있는 쪽이 원래 막혀야 하는데 그렇게 않은 경우에 장이 그리로 내려와서 탈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서혜부 탈장이라고 한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게 왜 위험한 상태인지도 모르고 '부모님한테 혼날까봐', ('아프긴 한데 어디가 아픈지를 모르겠다') 등등의 이유로 애가 아무 말을 안해서 심각한 상태가 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경우도 제법 흔하다는 겁니다.
그럼, 검사를 해보면 될 것 아니냐고 합니다. 검사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검사비용도,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그 결과를 두고 '추리'를 해야되는 게 의료현장에서 진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혈색소 체크부터 적혈구, 백혈구 총량 등등, 빌리루빈 등등 수치 체크하고, 거기서 다시 세부적인 타겟을 잡아서 또다시 검사를 해야 됩니다. 그나마 앞에서 언급한 서혜부 탈장은 하의를 벗겨보면 바로 진단이라도 됩니다. 만약 내분비계 질환이면 진짜 그때부터 정말 큰 문제가 되는 겁니다(내분비계는 우리 몸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들을 말한다. 내분비계 질환은 대부분 호르몬 이상 질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소아과라고 해서 인체의 모든 분야에 전문가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장호르몬만 해도 한 두가지가 아닌데 이런 호르몬들이 몸 속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기니까, (호르몬에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는) 특정 종류의 약물은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성인에게 투약하는 것처럼 속편하게 투약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투약할 때 그냥 체중으로 나눠서 계산하는 게 아니라 신체 내분비계 상태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이러니까 소아과의 경우, 진단이 어려운 질환일 경우 사실상 종합병원이 병명 특정 하나에 다 매달려야 되는 상황까지 가는 겁니다. 분야별로 다들 모여 앉아서
'어느 수치는... 음... 사진 찍은 것 좀 걸어봐. 어... 저거 공동? 뭐야 저거? PET 새로 찍어야 되는 거 아냐? 아 저장해놨냐? 그거 띄워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거 좀 보라고, 수치가 개판이네. 이거 XXXX 아냐?'
대략 이런 식으로 추적해야 된다는 겁니다. 대충 이런 느낌이겠거니 하고 넘겨주세요. 이런 식으로 병명부터 잡아야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호르몬의 폭풍이 혈액검사 등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병명 특정이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하고요.
여기서 업급했던 소아과의 문제는 사실 전 세계 의료 현장의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인종, 국가를 넘어서서 아이들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 '인류 공통의 난제' 잖습니까. 소아과라고 하면 사실 감기약이나 처방해주는 과라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실제 현실은 정말 골머리 뽀개진다는 게 핵심이라는 겁니다.
아니 그냥 ...
병원 가서 검사 기계 앞에 서서 버튼 누르면 '너님은 XXX 라는 병입니다.' 라고 바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는 것만 생각해봐도 사실 반쯤은 답이 나옵니다. 어떤 의미로는 소아과 의사 제대로 하려면 추리능력도 보통 수준을 넘어야 할 수 있다는 거죠.
좀 길다. 하지만 이 댓글에서 보듯이 소아과 문제는 전 세계가 겪는 문제이다. 위에서 열거된 여러가지 이유로 소아과는 정말 힘들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소아과를 제대로 하려면 아이 한 명에 종합병원 모든 과의 의사들이 다 달라붙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럴 순 없다. 비용도 문제지만 그럴 시간도 없다. 협진이라는 게 말만 좋지 실제로 진료 과가 2개로 나눠지면 환자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경험있으신 분들은 다 알 것이다. 이렇게 힘든 협진은 응급상황에서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니 응급상황에서는 한 명의 소아과 의사가 모든 책임을 지고 최대한 살펴봐서 애가 죽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질병명을 결정하는 것도 어려운 소아환자를 의사 한 명이 혼자 무한 책임을 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책임은 너무 크고 진단하기도 치료하기도 어렵운데 돈은 못 벌고 보호자들로 부터 공격이나 당하고 잘못되면 소송을 달고 살아야하는 과에 누가 갈 것인가? 지금 소아과 전체가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야간응급소아 환자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구급차 탔는데 병원 못 찾아 뺑뺑이 돌았다...노키즈존으로 변하고 있는 응급실” (인사이트)의 기사제목에서 보듯이 응급실은 이제 '노키즈존'이 된 것처럼 소아환자를 담당할 당직의사를 찾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아이는 죽었고 그 이후를 다른 후속 기사들에서는 이후 일을 확인할 수 있다.
"사망한 5세 어린이를 마지막에 진료했던 당직 소아과 교수 어제(16일) 사망 소식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오늘 오전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병원이 설득하고 있는데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소아 병상이 따로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서울에 현재 4개 있는데 이게 3개로 줄어들게 된다"
정말 큰 도시 서울에 야간에 소아환자를 받을 수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이 4개 있는데 저 분이 그만두면 3개가 된다고 한다. 이제 밤에 안 아픈게 효도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밤을 책임져 줄 소아과의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정원만 늘린다고 소아과를 지원할 사람이 늘어날까? 의사는 국가고시만 합격하면 일반의사로 개원할 수 있는데? 그냥 일반 의사를 하고 말지 왜 미칠듯이 힘들고 책임도 많고 소송도 많이 당하는 소아과를 지원할까? 그냥 전공의 과정없이 일반의사 개원이 더 나을 것이다(의사 지인이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동네에 당뇨나 골다공증을 가진 노인 환자 몇 분만 고객으로 삼아서 친절하게 잘 해드리면 '잘한다'라는 소문이 퍼져서 병원 운영하는 비용은 무조건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소아과에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일반 의사가 되는 것이 속편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법을 개정해서 일반의사 개원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소아과 의사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혹여나 그런 의도의 법이 발의 되었다고 하자. 바로 직업선택의 자유 운운 하면서 난리가 날 것이다. 이런 반대를 뚫고 만약 그 법이 통과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의사국가고시를 통과 했는데 의사가 안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개업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의사가 안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의사가 되지 않으면 인턴, 전공의 과정도 밟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전공의가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런 것도 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의대정원 늘리자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일단 부족한 과의 의사, 부족한 지방의사 인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부터 먼저 의논해야 한다는 의사협회의 의견에 동의한다(그냥 들으면 돈 이야기를 하자는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저 방안을 확보하기 전에는 의사정원에 손대봐야 아무런 효과도 못 거둘 것이다). 저건 의사들의 사명감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방안 없이 의대정원만 먼저 늘려버리면 서울과 경기등 대도시에서 인기과 의사간의 경쟁만 심해질 뿐이지 부족한 과의 의사나 지방에 상주하는 의사의 수는 절대로 늘릴 수 없다.
사족인데 좀 긴 사족)
앞의 기사를 보니 생각나는 '헬로우 블랙잭'이라는 일본만화가 있다. 거기에서 소아과 문제를 다룬 부분을 캡쳐한 그림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그림을 올릴까 하고 생각했는데 일단 캡쳐본이라 저작권법에 걸릴까 걱정도 되고, 올려도 출처를 명기할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중 몇 대사들을 잠깐 옮겨볼까 한다. 편의상 파견의사 A, 응급 소아과 베테랑 의사 B 라고 하자(나도 만화를 본 게 아니라 캡쳐되고 편집된 그림만 봐서 잘은 모른다).
#1 (매우 바빠 보이는 응급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들이 많이 보인다. 장면이 바뀌어 환자를 보는 A, B가 보인다)
A: 인원을 늘릴수는 없습니까?
B: 힘들어. 소아과는 적자야.
A: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며) 하지만 돈을 낼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데요?
B: (침대에 누운 아이 한 명에 의사 3명과 간호사 4명이 달라붙는 장면을 보여주며) 아이들을 치료하는데 어른보다 몇 배의 수고와 인건비가 들지. 아무리 버둥대어도 적자야. 야간은 한 병원당 몇 만명을 맡아야해. 오늘은 자네와 내가 그걸 다 감당해야 한단 말이지.
A: 가능해요? 그게?
B: 가능할리가 있나
#2 (급한 환자를 이송하겠다는 전화를 받은 B)
B: 받을 수가 없겠군요. 지금 꽉 찬 상태라서요.
(깜짝 놀라는 A를 보여준다. 이어 대기 환자로 가득찬 병원 대기실을 보여준 뒤 다시 진료실로 화면이 바뀐다)
B: (다른 환자를 보며) 이 아이는 오늘 저녁내로 수술을 해야 해. 난 지금부터 외과와 상의해야 하고.
A: 방금 전화왔던 아이는 죽일 생각이세요?
B: 그럼... 받아주면 살릴 수 있겠나?
#1에서도 언급하듯이 돈을 낼 사람이 많은데 '민영화가 되면 소아과 비용을 올려서 소아과가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가 아픈데 보통의 부모들은 빚을 져서라도 치료하려고 한다.그래서 소아과의 비용이 올라도 투덜거리면서 올 것이다. 그렇게 돈이 된다면 소아과 의사들이 늘어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은데 같은 장면에서 바로 그 답이 나온다. 소아과는 한 두명이 붙어서 될 일이 아니다. 그 비용 다 인정해주면 보험공단이 망하거나 보험료가 미친 듯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보험이 안되면 왠만한 사람은 그 비용 감당 못한다.
#2에서 보이는 장면이 아마 위에 뺑뺑이 돌았다는 환자의 케이스 일 것이다. 당직의사가 없으면 환자를 아예 받지를 못한다. 당직의사가 있어도 이미 응급환자가 많이 있으면 더 이상 받지를 못한다.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받아서 환자를 죽이느니 다른데 찾아가라는 것이다. 이건 의사의 사명감이나 책임감에 기댈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일본의 현실을 고발하는 만화는 우리나라와 차이가 없다. 일본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인 것이다. 그래도 이 만화는 만화라서 그런지 아래의 #3으로 마무리를 했다. 뭔가 있어보이지만 너무 의사 개인의 사명감에 의존한다. 현실적으로 이건 불가능할 거 같다(그냥 전공의 포기하고 일반의 개원이 제일 현실적이다).
#3 (지친 모습으로 나타나는 B)
B: 아까 전화 받은 환자... (멍한 얼굴로) 죽었다더군. 그 남자아이
A: 선생님이 소아과를 계속 하시는 이유는 뭐죠?
B: (단호한 얼굴로)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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