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

동작충효길 - 현충원길을 가다

레기통쓰 2023. 5. 17. 08:00

산책을 하다가 좀 멀리 갔다. 사진을 찍을 생각 없던 처음과 달리 현충원 가겠다고 맘 먹었을 때 부터 사진을 찍었다. 오늘 놀러간 곳은 현충원이다. 

 

현충원은 동작구의 서달산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서달산의 등산로가 현충원을 감싸고 있다고 보면 된다. 현충원에서 서달산의 등산로로 이어지는 문을 통문이라 부르며 나가는 곳에 따라 다섯개의 통문이 존재한다. 이 중에 내가 오늘 간 곳은 상도통문 쪽이다. 

현충원 조감도

 

숭실대입구역에서 남성역 쪽으로동작충효길을 따라 걷다 보면 상현중학교가 있는 고개를 넘어가서 살짝만 내려가면 현충원으로 통하는 현충원길 입구가 보인다. 

오늘의 코스
상현중학교를 지나서 내려가다보면 왼쪽에 이런 안내문이 있다. 현충원길을 갈 것이다.
현충원 길의 시작. 육교의 입구로 길을 건너가야 한다.
산이다. 그래서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나무 계단이라 삐그덕 소리가 좀 난다

한참 계단을 올라가면 신발 털 수 있는 기계가 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삼거리(정확히는 사거리)가 나온다.

계단을 다 올라오면 오른쪽으로만 안내되어 있다. 왼쪽으로 가면 힘들게 올라온 길 다시 내려가는 길이다.
내가 온 길까지 포함하면 사거리이다.

내가 온 길은 남성역으로 가는 길이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실제로 숭실대 입구역이 더 가깝다. 왼쪽으로 가도 등산로, 오른쪽으로 가도 등산로. 직진하면 현충원이다. 서달산의 등산로는 현충원을 둘러 싸고 있는 형태라 어디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왼쪽으로 가면 달마사 라고 서울 야경 명소(여기서 야경보면 그렇게 이쁘다고 한다)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특별한 곳 없이 전망대 몇 군데 있는 그냥 등산로이다. 사당에서 동작역까지 가다 보면 왼쪽 위에 아파트들 뒤로 보이는 산길, 그 길이다. 

현충원에 입장하려면 저 이상한 회전문 같은 걸 지나야 한다. 삐그덕 소리가 아주 크다.

현충원 길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개를 만날 확률이 없어서 이다(난 저 반려동물 출입금지 라는 말이 너무 좋다. 등산로에도 개 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늘 스트레스 받는다. 언젠가 적게 되겠지만 나는 완전 꼬마 강아지라도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편이라 개 없는 동네를 좋아한다). 나랑 마주쳤을 때 개를 자신의 뒤로 숨기거나 줄을 짧게 잡는 시늉이라도 하는 매너 있는 인간을 거의 못 마주쳐서 그런지 일단 다른 곳보다 현충원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 (하도 예의 있는 그런 인간이 희귀해서 마주치면 기억할텐데 내 기억에 2명의 아줌마와 한 명의 꼬마남자애 셋 뿐이다)

 

어째든 저 회전문 왼쪽으로 가서 밀면 들어갈 수가 있고 외길이라 길 따라 가면 상도통문으로 갈 수가 있다. 

현충원을 나가는 곳을 통문이라고 부른다. 통과하는 문? 다섯개가 있고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이름이 틀리다.

참고로 통문은 나가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붙어 있는데 다섯개가 있다. 동작통문은 이수교차로로(동작역 건너편으로 내려와진다) 나가는 곳이고 사당통문은 사당역이 아니라 이수역 쪽으로 내려가는 문이다(정확히는 아파트 단지로 내려가서 계속 내려가면 이수시장이 나오고 이수역이 나온다). 흑석통문은 흑석동 위쪽으로 통하는 문이고 비계통문의 비계는 흑석동 중 일부 지역의 예전 이름이다(현재는 흑석동으로 명칭이 통일 되었고 비계고개 라는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지역이다). 

상도통문의 시작점(현충원 기준)에 호국지장사라는 절이 있다.
호국 지장사

상도통문으로 내려오다보면 호국지장사를 만날 수 있다. 다른 통문에는 이런 시설이 없다. 유일하게 이 쪽 통문에만 따로 절이 있다. 그 앞에는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하나 있는데 동작구청장이 보호하는 보호수라고 한다. 

보호수 느티나무

요길 지나면 드디어 현충원 순환도로를 만난다.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박정희 묘역이고 왼쪽으로 가면 내가 좋아하는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으로 간다. 멀리 보이지만 어르신들이나 아주머니들이 걷는 운동 하는 걸 가끔 볼 수 있다.

나는 여기 올 때 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고민하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 가면 현충천을 걸어볼 수 있다. 현충천은 현충원의 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도랑으로 옆에 산책로가 붙어 있어서 비가 많이 오지 않으면 냇가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왼쪽으로 가면 내가 좋아하는 독립군 무명용사 위령비가 있어서 오늘은 그리로 가기로 맘 먹었다. 왼쪽으로 가면 약수터도 만날 수 있는데 물이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지만 등산했다는 생각에 한모금쯤 마셔 본다.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뭔지 모르지만 조금 울컥하기도 하고... 나는 '무명용사' 관련된 거 좋아한다. 저 밑에 가면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 위령탑과 거기는 내가 늘 들러 인사하는 곳이다. 이 앞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정문을 향해 내려간다. 여기는 군인, 경찰, 순직공무원들까지 다양하게 있어서 코스는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늘 달라지는 것 같다. 

 

내려가다보면 이렇게 많은 수의 묘비를 볼 수 있다(혹시 이름이 나오는 게 불법일까? 갑자기 불안하네). 앞면에는 직위와 성함이 있고 뒤에는 일련번호와 어디서 전사 또는 순직하셨는지가 적혀 있다(병사하신 분도 있다. 또한 위의 두 사진은 다른 곳에서 찍은 것으로 같은 비석이 아니다). 현충원이 너무 커서 버스도 돌아다닌다. 

버스는 1시간에 1대 오며 정차하는 곳마다 매시간 같은 분에 도착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행한다. 

 

참고로 현충원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운영한다. 다섯시 반쯤 되면 현충원 전체에 안내방송이 나와서 이제 슬슬 집에 가라는 요지의 방송이 나온다. 

 

이렇게 정문으로 내려가면 현충문을 볼 수 있다. 

현충문이다. 정치인들이 현충원에 왔다고 티비에 나오면 늘 여기 들어가는 모습을 찍는다.
멀리서 찍은 현충탑. 정치인들이 분향하는 거기 맞다. 2019년부터 일반인의 분향도 허용된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들어가본적은 없다.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한다. 그래서 멀리서 땡겨 찍었더니 사진도 엉망이다.

현충문과 현충탑은 정치인들이 늘 찾는 곳이다. 정당의 대표가 되는 등의 큰 일이 있으면 꼭 여기와서 잘할께요 라고 인사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상하게 여긴 가기 싫어한다(아직 큰 일을 못 맡아서 그런듯 ㅎㅎ). 이 현충문 바로 옆에 보면(정문에서 볼 때 기준으로 왼쪽에)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이 있다.

無名勇士靈顯(무명용사영현)이라 적혀있다. 영은 영혼할 때 그 영이고 현은 나타내다라는 뜻이다. 영현으로 붙여부르면 사망자의 영혼을 높혀 부르는 말이다

6.25 전쟁때 교복을 입은채로 달려왔다 전사한 분들을 기리는 탑이다. 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에서도 그랬듯이 나는 여기 앞에서도 늘 울컥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젊었을 때의 나라면 전쟁나면 시골로 도망갈 거 같다. 혹여나 징집당할까 하면서... 나는 겁이 많아서... 대체 저 분들은 어떤 분들이길래 그렇게 용기있게 싸우셨을까? (오늘 내려온 쪽은 국가유공자들 묘라서 눈물까지는 잘 안나는데 박정희 묘역 쪽으로 내려가서 조금 더 가면 호국전우의 묘가 있는 영역이 있다. 거기도 6.25 전쟁 공로자들 모여있는 곳인데 거기 갈 때도 늘 숙연해진다)

 

이제 오늘 볼 건 다 봤다. 사실 다섯시 다 되어서 걷기 시작해서... (오늘 낮에 너무 더워서 좀 늦게 나섰다)  시간이 없어서 앉아서 쉬는 건 생략했다. 현충원의 최고의 매력은 정말 조용한 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쉴 수 있다는 건데(외곽 순환도로 따라 벤치들이 많아서 쉬기 좋다. 차도 거의 안다니고 사람도 1시간에 많이 만나도 10명 이하다) 너무 늦게 와서(5시 반에 나가라는 방송도 오랜만에 들었다) 오늘은 생략했다. 

 

정문을 나서서 동작역 9호선 통로로 내려가면 현충원 안내가 있다.

현충원 안내도 중 일부

5번 출구로 나선 뒤에 4호선 동작역 2번 출구를 찾아가서 오른쪽으로 건물로 들어가면 동작역 4호선이고 왼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한강변이다. 동작대교 아래쪽으로 갈 수 있는데 동작대교 밑에는 운동기구들과 휴식을 위한 벤치들이 많아서 한참 쉬면서 놀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다가 맘 내키면 반포쪽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아니면 반대로 노량진쪽으로도 걸어간다. 오늘은 반포로 갔다가 고속버스 터미널 앞 지하 상가에서 밥먹고 놀다가 퇴근체증을 피해서 버스타고 집에 왔는데 그 과정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부족해서(사실은 지치고 배고파서 사진 찍을 생각이 없어서) 사진을 하나도 안찍었다. 아쉽다. 

 

물 500ml 하나 들고 나선 여행을 신나게 하다 왔다. 오늘 걸은 코스가 등산하는 코스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샌들 신고도 가능한 코스이다(현충원에 샌들은 좀 안어울린다. 반바지는 여름에 입고 자주 가는데 샌들까지는 아직 안 신어 봤다). 현충원의 최고의 장점은 (정치인이 오는 날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정말 조용한 분위기라는 거다. 고요한 곳을 계속 걷고 있으면 뭔가 생각을 깊게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지 집중하기 정말 좋다. 조용한 분위기가 좋다면, 그리고 혹시나 근처에 사신다면 한 번 가보라고 꼭 권유하고 싶은 곳이다. (혼자 있는 걸 무서워 하는 분들은 지인과 같이 가길 바란다. 아는 분을 데리고 몇 번 갔는데 그 분이 나 없을 때 혼자 갔더니 무덤들이 많아서 무서워서 빨리 나가버렸다고 하셨다. 나는 혼자 가는 게 더 좋던데...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사족1)

현충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달산 등산만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오늘처럼 한강으로 가서 한강보면서 잠시 논 뒤에 등산하겠다는 맘이 들면 현충원 동문 옆에 있는 등산로 계단(이건 계단이 미친 수준이라 맘먹고 올라가야 한다. 277계단이라고 뒤에 링크한 사이트에 가서 보시면 알 수 있다)을 시작으로 한 바퀴 돈 다음에 흑석동에서 내려와 버스타고 집에 간다. 서달산의 등산코스는 언젠가 사진 찍으면 다시 적어보겠지만 서울 현충원길 (tistory.com) 이라는 티스토리에 너무 잘 나와 있어서 내가 꼭 안해도 될 거 같다. 그래서 링크 걸어둔다. 저 사이트 가서 보면 몇몇 사진에 보이겠지만 등산로를 따라가면 현충원 경계 담.. 아니 창살... 어째든 현충원의 경계를 왼쪽이나 오른쪽에 계속 두고 걷는 코스가 많다. 그것도 나름 재미긴 하다. 

 

사족2)

사진 크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서 사진들이 다 망한 듯 하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오네. 좀 더 찾아보고 다음에 사진 올릴 일 있으면 잘해보겠다.